- 일시: 2021년 10월 13일, 오후 7시~9시
- 장소: ZOOM
- 발제: 유영이

- 토론: 이화진, 홍주희
- 지원: 박영석, 신명진, 임한솔
‌- 기록: 박정은


1부

유영이‌‌   < 도시, 상상하고 기록하기 > 발제.  (클릭 → 발제문으로 이동)

이화진   네. 안녕하세요. 저는 어린이들과 함께 작업하는 스튜디오 이룹빠!를 운영하면서 현대미술 작가로 활동하는 이화진이라고 합니다. 저는 토론문 타이틀을 보이지 않는 도시 탐구하기라고 정했는데요. 유영이 선생님의 발제문을 받고 도시를 해석하는 방법으로서의 공통점들을 발견하면서 이번 토론문을 작성했습니다.

세잔의 작품을 ‘다시점’이라고만 이해하는 것은 인식론적 불가능성을 존재론적 파국으로 이해한 입체파의 오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요. 세잔은 ‘세계는 우리 인식의 한계 너머에 신비롭게 존재한다.’에 가까웠지만, 입체주의는 이것을 알 수 없는 것은 없는 것이라고 이해했고 고전적 세계관의 종말을 곧바로 정육점식 해체로 몰고 갔습니다. 마르셀 뒤샹에 이르러서야 이러한 오해는 조금 교정되었지만,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작품으로는 ‘계단에 내려오는 나부’라는 작품이 있어요. 한번 검색해서 보시면 좀 흥미로우실 거예요. 이해하기도 좀 쉬우시고요. 여기서 요지는 다시점 혹은 다층적이라고 하기보다는 다시간적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차라리 오해의 소지를 좀 줄일 수 있습니다. 세잔의 작품을 묘사하는 말 중에 제가 좋아하는 건 관객이 그림 앞에 있는 게 아니라 그림 안에 있는 듯하다라는 건데요.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잘 표현하는 말로 이러한 독해와 함께 회화는 비로소 현대적인 미디어가 된다. 저희는 그렇게 해석을 하고 있어요. 즉 그 자체는 독립적인 자리를 주장하는 물건이 아니라 매개물의 위치를 획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도시를 이해하는 방식도 이러한 세잔적 전회를 필요로 합니다. 즉 카테시안 작도 공간에 갇혀 있는 그 도시 공간 이미지를 흔들어서 시간적인 경험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참여하는 체험으로 바꿔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콜로미나는 아돌프 로스와 르코르뷔제의 사례를 연구해서 건축이 본질적으로 미디어적 속성을 획득하는 계기들을 탐구했는데요. 하나는 아돌프 로스는 과격할만큼 절제된 표현으로 표현을 하고 또 르코르뷔제는 차고 넘치는 기록과 제스처로 각각 건축을 미디어적 존재로 보았을 때 생각할 수 있는 전형적인 계기들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서 건축은 조각이나 회화의 프레임을 제공하는 지위에서 스스로 침묵하거나 수다를 떨 수 있는 모던한 체험 양식으로 성장했는데요. 고전적인 건축 요소의 해체를 수반하는 이러한 변화에는 파사드와 골조의 분리, 수직 동선과 수평 동선의 분리, 내부 공간적 위계의 해체와 이벤트적이고 영화적인 공간 체험 등이 자리합니다. 오늘날에는 정말 많은 파사드와 막다른 골목들이 우리한테 어떤 말을 걸고 있는지 건축보다 오히려 도시 그 자체가 이러한 전회를 통해서 새로운 미디어로 발견됩니다. 우리는 이미 발터 벤야민의 파리 아케이드의 경험의 원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이렇게 본다면 모든 계획의 출발 시점에 자리하는 그 카테시안 작도 공간은 마치 사진 장르가 고전 시대의 완성이면서 동시에 현대적인 공간 재현의 출발에 위치하는 것처럼 일종의 리듬의 죽음이자 새로운 공간의 탄생으로서 경계에 위치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간에 한순간을 고정하는 것과 공간상의 위치를 고정하는 것은 실은 같은 행위인데 오늘날 지극하게 어른스럽고 직업적이고 프로패셔널한 역량으로 여겨지는데요. 그와 함께 절대적인 계획하에 신화도 태어나고 이상하게도 현대적인 외양을 갖춘 공간의 상상도는 고전주의 회화처럼 알레고리적 독해로 타락하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저희가 어린이들과 작업을 지속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저희가 이보다 훨씬 단순한 이유로 어린이들과 작업을 시작했지만, 계보학적 자취를 더듬다 보면 위에 적은 생각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린이들과는 특별하게 어떤 선입견이나 두려움으로 오염되지 않은 생생한 첫 만남의 기록들을 살펴볼 수 있다고 적었는데 지금도 아이들과 만나면서 어떠한 환상의 공간이라든지 자기가 경험한 세계들을 필터링 없이 저희의 작업들로 밀접하게 연결이 되고 있어요. 물론 교육이라는 큰 맥락 안에 있어서 다른 교육적인 이유들을 많이 결합하지만, 그것보다 전체적인 상황은 카니발 페디고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이렇게 축제가 열리는 공간처럼 모든 게 통합된 활동 같아요. 저는 구부요밴드와 이룹빠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구부요밴드는 구보요라는 애칭을 쓰는 전용석 선생님과 저희가 그룹명으로 활동하는 현대미술 그룹의 이름이고 이룹빠는 이러한 작업을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그룹의 이름이에요. 저희의 작업은 이러한 기초 위에서 미디어로 포화된 오늘날 인간 체험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하는 상황을 다루고자 합니다. 현대미디어 이론, 미디어 계보학이라고 하는 통칭적인 분야에서는 인간 체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사성 동위원소, 플라스틱, 지질시대에 대한 탐구, 전 지구적 네트워크 등을 하이퍼 오브젝트라고 부르는데요. 도시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것은 인간 수명의 한계를 훨씬 넘어서 존속하고 인간의 통상적인 인식의 한계 너머까지 확장돼서 도시 안에 공간이 없다고 할 수 있고 마치 인간의 자유 의지보다 유전적, 이기적 목적이 인류 존속에 더 본질적인 것처럼 우리 도시 체험 각각이 사실 도시 자체의 존속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에 이른 상황입니다. 텍스트로 적으니까 너무 극단적인 것 같지만 저희는 자기 창조적 무한 복제의 이러한 상황이 인간의 행위를 곤충생태와 비교하는 논의로 이어지고 있는 논의 중에 하나인 점액질 도시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접근하고 있어요. 앞서 보여드린 이미지는 북서울미술관 전시회 이미지였는데요. 특히 북서울 전시는 보이지 않는 도시를 탐구하다가 만들어진 점액질 도시 이미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는 설명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하자면 사회적이고 윤리적 가치나 기념의 기능으로서 벗어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거라서 현대 회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 보이지 않는 것은 판타지가 아니라 오히려 세잔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나는 지금 테이블 위에 사과를 보고 있지만, 그 옆면이나 뒷면이 존재하는 걸 알고 시점을 이동하면 볼 수 있으나 그 모든 시간에 그 시점을 통한 사과의 본질 같은 게 그 아방가르드 예술이 붙잡고 싶어 하는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전제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이러한 점에서 발달이 도시에 대한 해석 중에서 세잔이나 줄리 머레투의 작업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도시를 보기 위한 또 다른 눈을 작품에서 보여주고 싶지만 그 도시에 존재하는 시간, 이동성, 관계 등에 밀접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희도 하이퍼 오브젝트, 점액질 도시 등의 개념들을 과거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이 이제는 자체 존재감을 가지고 우리 현실에 출몰하는 현상을 다루기 위해서 연구된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어린이 친구들과 도시에 대한 담론을 나누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도시는 무얼까. 이런 것들을 얘기하다 보면 같은 도시를 향유하고 있지만, 각자의 개인에 맞춰서 도시를 읽는 방법이나 아니면 그 같은 도시에 대한 감정의 표현 같은 것들이 상당히 점액질 도시라고 표현한 것처럼 오밀조밀 엮어져 있다고 생각을 해요. 개인의 생각이지만 이제 모두의 생각이 될 수 있는, 그래서 이런 도시를 향유하는 방법에 대해서 앞서 발제자분이 얘기하신 세잔이나 줄리 머레투의 관점 등에 조금 깊게 공유를 하는 편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이 작품은 칼비노 소설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친구들과 같이 공유를 하고 우리가 만든 도시들은 어떤 도시일까를 이야기를 먼저 나누고선 작업을 시작한 거예요. ‘이사우라’라는 도시예요. 칼비노 소설도 많이 읽어보셨죠. 저도 예전에 유영이 선생님께서 저에게 이런 소설 재밌다고 10년도 더 전인가 권해주셔서 한번 읽어봤었는데 이야기가 실제로 있는 도시일까 할 정도로 그림이 눈에 그려지는 게 있었어요. 그래서 친구들과도 이런 도시를 읽어줬을 때 친구들은 이게 환상의 도시다. 이런 것보다도 자기가 여기서 살고 있는 그런 경험들과 빗대가지고 이 ‘이사우라’라는 도시를 새롭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그런 이야기들을 수집해서 종이 모양으로 만든 거예요. 근데 워낙 많은 이야기들이 접합 돼 있으니까 꼭 이것들이 곤충 눈 보면 자세하게 하나의 덩어리 같지만, 안에 여러 가지 막 세밀한 것들이 다 모여 있잖아요. 여러 가지 상들이 맺혀지고 하이퍼적인 느낌들이 더 자연스럽게 강조가 되었던 것 같아요. 한 장을 넘겨서 보시면 이 공간은 저희가 여기가 ‘조라’라는 곳이고 건축 건물들의 묘사들이 있었는데 친구들은 신기하게도 아파트 현장의 공사장들이 복잡한 도시들의 한 단편처럼 읽고 이런 공사장들의 시끄러운 소음이나 아니면 계속해서 터널이 생겨나는 그런 것들의 이야기를 좀 들려주고, 그리고 그런 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표현할까. 그러니까 터널이 이런 하나의 감싸져 있는 도시처럼 읽히고 거기를 뚫고 나온 산들이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은 두려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서 저희가 한쪽에 보면 이렇게 오른쪽 맨 상단에 보면 거대한 발 같은 종이 모양을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개인적인 경험과 아니면 공간에 대한 환상과 그런 것들이 결합된 이미지처럼 표현이 됐습니다. 그래서 이런 덩어리들은 4개의 도시를 같이 경험을 하고 여기에 대한 도시의 소리들을 수집해서 근처 가까이 가면 센서들이 반응해서 도시의 소리들이 중간중간에 울려 퍼지는 작업을 북서울 전시에서 기획했던 것 같아요. 여기는 약간 더 목가적이죠. 그래서 친구들이 이렇게 숲에 대한 기억들을 같이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북서울 전시는 저희 구부요 밴드의 작업 성격보다는 오히려 이룹빠적 성격을 더 많이 가지고 간 도시 작업이에요. 그래서 어린이 친구들과 도시에 대한, 이미지에 대한 작업도 했지만, 사운드 스케이프라는 개념을 갖고 와서 같이 소리도 채집하고 친구들이 가장 자기한테 익숙한 도시의 소리라든지 아니면 자기가 살고있는 공간에서의 소리라든지 그런 것들로 사운드도 만들고요. 그리고 수집한 소리 갖다가 음악도 만들고 이렇게 해서 각자가 생각하는 도시들이 모였을 때 어떤 도시로 보여줄 수 있는지. 그리고 이것들이 합쳐졌을 때 관객들이나 아니면 여기에 참여한 친구들 자체가 이런 것들을 경험하고 다시 도시로 나갔을 때 반응이 어떻게 변화되어 주변의 소리나 아니면 모습들이 보이는지. 그런 것들의 경험을 같이 향유할 때가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유영이   네. 공유 감사합니다. 포트폴리오에 더 많은 작품들이 있는데 시간 관계상 이번에 북서울 미술 전시를 중점적으로 공유해주셨습니다. 그러면 두 번째 토론 준비해 주신 홍주희 선생님께서 자료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홍주희   안녕하세요. 저는 홍주희라고 하고요. 저는 장소성을 주제로 작업을 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입니다. 저는 그래픽 디자인 작가로서 단점에 의해서 도시를 바라보고 장소성을 재해석하여 시각화하고 관객들과 소통하는 이런 작업들을 진행을 합니다. 저도 사실 굉장히 조경과 연결지어서 어떻게 말씀을 드릴 수 있을지 고민들을 했었는데, 유영이 선생님께서 이 도시를 보는 관점과 설계도를 넘어서 제가 보는 관점과 또 연결을 지어서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저의 작업 이미지들을 통해서 접점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디자인 쪽에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렇다 보니 서로의 위치에서 도움이 좀 많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저의 관찰 지점을 통해서 많은 영감을 갖고 가시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가상 공간과 실제 공간 사이에 간극에 대해서 많은 고민들을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 보시는 바와 같이 구글 스트리트 뷰를 제가 그냥 어느 날 이렇게 딱 보고 있었는데 굉장히 오류가 많다는 것들을 조금씩 발견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 저쪽에 보이시는 관광객 한번 이쪽으로 따라가 보면 사실 없어져요. 그래서 이게 보면 너무 이상하게 생각이 들기도 했었고 또 저쪽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가보고자 한다면 계속해서 서로 개별 이미지들의 집합이라는 것들. 사실 이 공간 자체가 실제 공간과는 조금씩은 다르다는 점들을 제가 발견할 수가 있었던 것 같아요. 방금 저쪽에 서 있었던 사람도 이렇게 따라가다 보면 없고. 약간 하나의 런닝맨처럼 저 사람들을 쫓아가고 싶은데 그런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고 또 저는 이쪽 공간을 그냥 배회할 뿐이지 실제 공간이 아니라는 부분들을 조금씩 발견을 할 수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기 앞에 있는 경찰관 또한 갑자기 사라지는 이런 오류성들을 조금씩 발견을 하면서 이런 점들을 제가 계속해서 캡처를 해놓고 아카이빙을 시작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방인의 관점으로 가상 도시 공간을 보고자 했었는데 그래서 몇 구절 중에서 특히 유영이 선생님께서 쓰신 토론문이 되게 와닿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몇 가지를 조금 인용을 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할게요.

공간 인지는 여러 방향과 깊이로 이루어진 동시적이고 다층적인 곳이다.

그리고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주체일지라도 항상 다른 공간을 창조할 수 있다는 부분들을 통해서 저는 도시 자체를 하나의 스토리텔러로서 관점에 의해서 바라볼 수 있게 관객들에게 유도를 하고자 했던 점들이 있었고 또 머레투의 작업과 연결지어 봤을 때도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우리가 그 절대적 공간이라는 과거와 현재, 허구와 현실, 그리고 주관적, 객관적인 것과 연결된 이원론적인 그 개념을 폭발시키며 지도에 있는 공간들이 굉장히 상대적이고 역동적인 공간이다는 점들을 저 또한 한 번씩 드러내 보고자 했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시간성이 부여된 새로운 공간으로서 가상 공간과 현실 공간의 시공간의 차이들을 드러내는 작업으로 진행을 해보고자 했었습니다. 그래서 제 작업의 이미지들을 보여드리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의 작업은 there is no there이라고 해서 그곳에는 그곳이 없다. 있음직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요. 그래서 디지털 공간 그중에서도 스트리트 뷰의 오류성과 비물질적 경험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고찰을 그래픽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해석한 출판물 작업이라고 보실 수 있겠는데요. 저는 이렇게 그동안 제가 목격한 생각들을 기록하고 책으로 담아내는 이런 작업들을 진행을 합니다. there is no there은 가상 도시 공간은 개별 객체가 연결된 허구의 세계이며 사이버 공간에는 공간이 없음을 오류를 통해 드러내는 프로젝트입니다. 제가 쓴 토론문을 같이 읽으면서 진행을 하도록 할게요.

가상 공간은 물리적으로는 정확한 위치나 장소가 존재하지 않으며 물리의 법칙 지배를 전혀 받지 않는 철저히 비물리적인 공간이다. 이 비물리적인 공간에서는 존재하는 사물들이 일정한 위치를 점유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주체가 실제 공간을 탐험하는 것처럼 작동되는 진정한 공간이 아니라 개별 객체의 집합이며 개연성 없이 디지털 이미지가 부유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개별 공간이 개별 객체의 집합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구글 스트리트 뷰를 통해 광화문 광장으로 장소를 선정하여 관찰하기 시작했다. 스트리트 뷰에서 고정 주체가 길 동상 건물이라면 익명의 사람들, 풍경, 날씨는 주체 없는 정보가 된다. 연결되지 않는 거리 풍경, 왜곡된 사람 환영, 편집된 하늘 등 디지털 이미지가 짜집기된 오류 현상을 기록하고자 했다. 본인은 가상 공간에 이야기를 전달하는 주체가 되어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어딘가 다른 아이러니하고 개연성이 상실된 도시 공간임을 현상을 기록한 책으로 담아내고자 했다. 사진 속 장소는 낯선 곳의 방문이면서 동시에 낯선 곳으로 향하는 여정일 것이다. 공간 사이에 끼어버린 중간 지대에 비물질적 요소를 만들어내는 형이상학적 경험이 시각적 에러 혹은 경험적 글리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딘가에 없지만 어딘가 존재하는 인지적 콜라주는 디지털 세계 속에 결핍된 세렌디피티일지도 모른다.

우연히 마주하게 된 특정 장소와의 개연성 그리고 기억은 탈신체화와 탈공간화 사이를 끊임없이 이동하는 특이점이 되어 지금도 우리를 관통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거기와 어디 사이에 벽을 넘는 순간 장소는 시각언어로서 재형상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지될 수 있는 모든 것은 공간적이다. 물질과 물질 사이에서 파악되는 거리이며 구성 요소는 모든 공간을 기초로 한다.

생각과 생각 사이, 이곳과 저곳 사이, 구성 안에 놓인 어떤 형태의 간격도 우리는 공간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로 시작되는 차이의 개념은 느낌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데 이 또한 공간이다. 인간과 세계 사이의 낯섦, 인간과 인간 사이의 낯섦. 나아가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새로운 낯섦은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필연적인 사건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방인의 눈이 필요한 지도 모른다.

책을 조금 보여드리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파트 1: 그곳에는 거리가 없다. 북쪽은 한가로운 오전 거리. 동쪽은 여름날의 거리. 남쪽은 시위하는 거리. 서쪽은 한적한 거리. 개체 이미지는 픽셀화된 허상일 뿐이다. 연속된 시간이 아닌 공간에 대한 관념이 선형적 시간 구조를 넘는다. 시공간과 현실적 시공간의 경계가 애매해진 공간은 넓이, 높이, 깊이를 가지지 않고 정확한 위치나 장소를 가지지 않는다. 이 공간은 물리적 대상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데이터의 크기, 밀도, 연속성 등 다른 공간의 논리를 적용받으므로 모종의 장소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파트 2: 그곳에는 사람이 없다. 다리가 세 개인 사람. 기울어진 사람. 투명한 사람. 복사된 사람. 가상 도시 공간의 환영들.
어딘가 다른 아이러니한 공간이다. 누구에게든 보이지만 뷰포인트에 의해 다른 사람의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파트 3: 그곳에는 날씨가 없다. 맑은 하늘. 파란 하늘. 흐린 하늘. 즉 나의 시선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여기에는 또한 일상의 시간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공간은 3차원적인 장소성을 배제하고 있되 전적으로 무의 공간이라고 할 수 없으며 거기에는 존재하지 않으나 어딘가에는 있는 하나의 풍경화 같은 것이다.

파트 4: 따라서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거기에는 존재하지 않은 한 어딘가에는 있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선 경계와 가상 공간이 한계가 없는 공간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아가 도시 전반의 가상의 비물질성과 물질성에 관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밑에 있는 네러티브를 통해 시사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책은 마무리가 됩니다.

유영이   자료 감사합니다. 사진과 설명을 함께 들으니 책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희가 1부에 배정된 한 시간을 마무리 지었고요. 지금부터 10분 정도 휴식 시간을 가진 후에 2부 토론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께서 혹시 질문 사항이 있으시면 쉬는 시간을 이용해 채팅방에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2부에서 논의할 때 같이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8시 10분에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2부

유영이   2부는 자유 토론 시간인데요. 1부가 발제와 토론문의 형식에 맞춘 다소 딱딱한 분위기였다면 2부는 두 분의 토론문에 이어 함께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자리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먼저 이화진 선생님께서도 말씀해 주셨지만, 저희 셋의 공통된 키워드가 ‘도시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하나의 주제로 모여진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크게는 시간과 이동성, 또 관계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기서 관계는 누구와 누구와의 관계일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 키워드들을 중심으로도 하나씩 이야기를 해도 좋겠습니다.

저는 우선 이화진 선생님께 먼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저 또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좋아하지만 사실 읽을 때마다 모두 다 소화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데요. 이 쉽지 않은 텍스트를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새로운 도시들을 구상했다는 지점이 흥미롭더라고요. 관련한 논의를 이끌어보자면, 도시를 미디어로 바라보는 작업의 태도나 자세가 어린이들과 작업을 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이들과의 작업을 통해 도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가 조금 더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볼 수 있지 않을까합니다.

‌‌‌‌화진   아이들과 같이 이렇게 작업을 하는 게 다양한 이점을 얻을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이점이라기보다는 원초적인 힘을 간접 경험한다. 이런 게 더 강한 것 같아요. 칼비노 소설을 좋아하지만, 텍스트로 읽히는 그것들에 대해서 상상하는 데서 좀 그치는 것들이 좀 있잖아요. 근데 아이들은 자기의 상상과 경험에 그런 경계성이 상당히 모호하다고 해야 되나. 모호하다는 표현이 더 안 어울릴 것 같아요. 그러니까 넘나드는 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유영이   더욱 자유롭다고 볼 수 있겠네요.

   네. 자유롭게 넘나드니까 이러한 점에서 우리가 작업을 같이할 때 저희도 그 경계성이 자연스럽게 좀 허물어지면서 작품으로 해석을 하면 아이들 이야기가 되게 보편적으로 갖고있는 도시 생활이나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이 아이들의 내재된 힘 때문에 직설적으로 그런 이야기들이 더 들려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예를 들면, 어떤 한 친구가 어떤 공간을 같이 이야기하면서, 저희는 이야기하면서 뭔가 만들어지는데요. 클레이로 만들면서 여기는 계속 뭐가 계속 터져요. 그 남자 친구들이 특유의 폭탄이 터지는 거 있잖아요. 계속 터지는 폭탄들이 있는 공간인데 그 폭탄들은 뭔가를 계속 터뜨려서 큰 산을 만든다는 거예요. 근데 저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좀 이렇게 무한대로 계속 생산해야 하는 물건들하고 버려지는 물건들이 있잖아요. 그게 마구마구 쌓여가는 그런 쓰레기 산 같은 것들하고 같이 연결점이 지어지고, 그리고 그 친구는 그 주변에 소음들이 있고 몬스터들이 등장해도 주인공들의 표정을 보면 그 의식하지 못한 듯이 평화롭거든요. 근데 우리도 사실은 그렇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들이 있지만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그런 우리 현대인의 모습하고 너무 밀접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아이들이 원초적으로 상상하는 환상의 이야기가 우리 현실 세계와 너무 딱 맞닿아 있는데 그런 것들이 환상이나 시간의 흐름이나 이런 것들에 경계성을 계속 헤엄치고 있는 그런 생각이 좀 들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과 작업을 하는 거는 그 원초적인 힘들을 저희가 현대 지금 현 시대 때 살아가는 그런 것들과 밀접하게 결합할 힘들을 더 직접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유영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힘. 그 힘은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정형화된 틀 안에서 무언가를 정리하려 하고 법이나 규칙을 체득하려고 노력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네요. 아이들은 더욱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작업을 통해 오히려 우리가 배우는 과정이 되겠군요.

이화진   네. 저는 아까 홍주희 선생님 작업 봤을 때도 광화문에 비슷한 느낌을 가졌거든요. 광화문에 어디는 시위하는 공간. 또 실제로 그 물놀이하는 공간. 그리고 또 한쪽에는 이제 약간 침묵하는 공간. 이런 것들이 같은 공간 안에 다 있잖아요. 근데 저희는 그 경계성을 모호하게, 딱 정확하게 좀 바라보고 있어서 그런 것들이 없지만 아이들이 이거를 해석했을 때는 묘한 공간으로 해석되지 않을까. 그런 것들이 저희가 힌트를 좀 얻게 되고 영감을 받는 그런 힘으로 작용을 하는 것 같습니다.

유영이   그 지점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경계가 없거나 혼종의 경관을 개념적으로만 배우는 것 같은데 아이들은 실제 그걸 인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사실 조경이나 건축, 도시 설계하는 사람들은 프로그램 계획에 익숙해요. 쉬는 곳. 걷는 곳. 나무를 심는 곳 등 도면 안에서 세상을 만들고 있는데 그것 또한 구분 짓기의 일종이지요. 사실 프로그램 간 열린 구조로 놓아도 공간을 이용하다 보면 자연스레 하나의 규칙이 생기는데 아이들을 통해 그러한 유연성을 배우는 자리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연결해서 홍주희 선생님께 질문을 또 하나 드리고 싶은데요. 가상 세계를 탐구하는 것은 마치 아이들의 순수한 자세와 같이 보였어요. 저도 구글이나 네이버 등 프로그램을 많이 이용하지만, 건물이나 길의 형태만 확인을 했을 뿐 사람들이 사라지고 날씨가 바뀌는 등 다양한 요소들을 관찰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 지점을 관찰하신 부분을 흥미롭게 보았는데요. 가상 세계를 통해서 물리적인 공간인 도시를 읽어내는 접근을 하시는 선생님이라면 인터스텔라나 테넷과 같은 영화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상과 실제 사이의 관계에 대해, 사이 공간이라는 용어도 말씀하신 것처럼 집중하고 계신 것 같아요. 제가 발제문에서 담고 싶었던 내용은 조경이나 도시 설계를 하면서 설계도에 담지 못하는 것들을 어떻게 담을까라는 질문이 있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담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일부러 버리는 것들도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선생님께서는 오히려 그 버려지는 왜곡된 이미지, 소외된 것들을 수집하셨기 때문에 이 작품이 만들어지게 되셨는데요 이를 하나의 낯섦 혹은 생성의 에너지라고 표현하신 부분이 재미있게 다가왔는데 비물질적인 에너지라고 하는 표현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싶어서 다시 시간을 드려봅니다.

홍주희   네. 그래서 저도 방금 유영이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도면에서 담지 못하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관념적인 것들을 오류로 담아낼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는 오류가 사실 잘못된 이미지라고 보기보다는 오히려 그거 자체를 우리가 발견함으로써 하나의 간극들을 그 안에서 볼 수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데요. 그래서 저는 맨 처음에 생각했던 부분들은 작업을 진행하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가상 세계가 허구의 세계일까 아니면 진정한 어떤 현실 세계가 될 수 있을까. 이런 부분들을 생각하다가 우연히 그런 오류들을 예전부터 조금씩 모아왔던 것에서 오히려 오류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라 이런 것들을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되겠다는 생각들을 기술적인 허점, 디스토션된 부분을 통해서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면 또 다른 어떤 작가들의 작업에서도 가끔 그냥 오류성 아니면 스크래치를 내는 작업들을 통해서 오히려 그런 잘못된 부분을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들을 드러내는 작가들도 좀 있는 것 같은데요. 작년에 전시했었던 바스키아 같은 경우도 본인의 그런 익명성에 스크레치를 냄으로써 그 장소가 개인적인 것이냐라는 이야기를 하고, 그 스크래치가 나타내는 시간성 같은 거를 또 드러내고 이러거든요. 그런 부분이랑도 같이 연결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저도 오류라는 게 사실 그냥 단순히 잘못된 거라고 보기보다는 하나의 도면에서 담지 못하는 하나의 그런 보이지 않는 세상들을 그런 비물질적인 거를 그 안에서 좀 담아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했던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사실 방금 이화진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환상이나 우리가 담지 못하는 것들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평소에도 생각을 되게 많이 하는데 말씀을 드리면 저는 또 어떻게 보면 그냥 우리가 흔히 넘어가는 것들을 그냥 좀 재미있게 좀 바라보고 이런 것들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예전에 작업 중에, 작업이라기보다는 제가 기록하고 수집하는 걸 좋아해서 예전에 아파트 조감도를 모아본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 특히나 아파트가 같은 경우, 되게 욕망의 이미지들이기도 하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그게 오히려 과장된 이미지 과장성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정말 드러내지 못하는 곳들, 도면이나 이런 곳에서는 보여지지 못하는 하나의 유토피아적인 풍경들, 우리가 바라는 그런 욕망들이 조감도 안에서 오히려 더 과장돼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특히 아파트 이름 같은 것들도 요즘에 센트럴 이런 것들 또는 캐슬 이런 식의 이름들이 많이 만들어지는데 오히려 우리는 시각화돼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조감도에서도 마찬가지로 더욱더 정말 포레스트 같은 숲을 많이 보여주기도 하고 인공 자연이긴 하지만 그거 자체를 정말 숲속에 있는 어떤 아파트 그리고 지하철역을 정말 크게 보여줌으로써 더 과장된 이미지를 드러냄으로써 우리의 욕망을 또 그 안에서 하나의 에러적인 요소로 보여주고 있는 부분들을 좀 발견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과 또 맞닿는 부분들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됐었고요. 또는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거는 모든 조감도에서 다 맑은 하늘들만 이상하게 나타나고 있는 부분들도 그런 환상들의 이미지가 여기에 반영되고 있구나라는 거를 좀 볼 수 있었던 지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하나의 에러적인 거, 무언가 이상한 거, 우리가 보지 못하는 거를 도면에 차마 담지는 못하지만, 버리는 이미지지만, 그런 식으로 오히려 이상한 부분이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는 도시를 그런 데다가 담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유영이   결국 버려진 것들을 모으다 보면 우리가 일부러 보지 않는 것들을 다시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오류의 힘이 참 인상 깊어요. 지금 이렇게 수집하는 오류가 하나의 책으로 엮여 시각화 되었다는 점이 우리에게 또 다른 임팩트를 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두 분께 공통으로 준비한 질문이 하나가 더 있는데 두 번째는 매체에 대한 거예요. 이화진 선생님께서는 아이들과의 작업을 전시로 보여주시고 홍주희 선생님께서는 책이라고 하는 매체로 엮어내는 게 흥미로웠는데요. 홍주희 선생님께서는 도시를 책으로 구성하시면서 도시가 어떻게 재가공된다고 보시나요.

홍주희   네. 되게 재미있는 질문이신 것 같아요. 보면 내비게이션도 마찬가지인 거 같은데 3D 적인 진짜 실제 공간을 스캐닝해서 2D 공간 안에다가 화면에 담는 것들이잖아요. 그러면서 나오는 어떤 스트리트 뷰나 이런 데에서 보여지는 오류성들이 막 있는 건데, 저는 오히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오류성 자체를 좀 더 보여줌으로써 이야기를 끌어가고자 했었던 점이었던 것 같아요. 다시 2D라는, 그 책이라는 매체에다가 담아내고자 했던 건데 오히려 그런 부분에 있어서 버려지는 이야기들도 분명히 있고 정보들도 많이 있겠지만 저는 책이라는 자체가 어떻게 보면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사람들에게 화자로서 이끌어 나가는 요소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킬로미터라는 단위 자체를 키로바이트라는 이미지에다가 담는 것들처럼 그 부분들에서 뭔가 달라지는 것들도 있겠지만 키로바이트로 제가 이끌고서 진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그런 작업들인 것 같고요. 사실 그런 차원이 달라질 때마다 계속해서 달라지는 어떤 버려지는 것들도 있고 굉장히 관점이 또 달라지는 것 같은데요.

예를 들면 플랫랜드라는 책에서 보면 1차원에서는 2차원을 볼 수 없고 2차원에서는 3차원을 볼 수 없고 1차원에서 우리는 점의 두께를 파악할 수가 없다. 이런 것들처럼 우리가 그런 부분들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들도 분명히 있지만 스토리텔러로서 이야기들을 끝까지 이끌어나가고 화자로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부분들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그런 디자인을 하는 하나의 작가로서 생각하는 게 제가 이런 것들을 어떻게 표현할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부분을 어떻게 소통할까가 가장 중요한 지점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책으로 엮어낸다는 거 자체가 놓칠 수 있는 부분들도 있지만, 작가로서 끝까지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는 하나의 관점을 드러내는 것들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유영이   이 책이 전시장의 도슨트와 같이 도시를 만나는 또다른 경험의 인도자인 것 같아요.

이화진 선생님께서는 아이들하고 작업도 하시지만 사운드가 같이 결합되어 있는 부분은 설명을 듣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어요. 아까 언급하셨던 내용 중에, 소리를 엮어 작업을 하니 아이들이 도시로 나갔을 때 도시에서의 소리에 더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도시와 소통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도시를 만나는 접점을 넓힌 효과와 같이 보였습니다. 사운드 작업에 대한 부가 설명을 조금 더 요청 드려도 될까요.

이화진   네. 저희가 그러니까 구부요 밴드의 구부요라는 이름은 전용석 선생님의 새로운 아티스트적 이름인데 예전에는 플라이시티로 활동을 했었어요. 구부요 밴드로 전향한 이후에 가장 관심을 둔 게 미디어로서의 도시랑 도시의 사운드 스케이프를 중점으로 작업을 이어오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사운드가 사실은 그런 평면적 이미지보다 훨씬 더 개인적인 면이 있잖아요. 그래서 지극히 좀 개인적인 해석이 가능한 범주가 저희한테 키워드로 들어오면서 저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런 사운드를 만들어도 마주하는 관객들은 개인적인 경험이나 환경들을 베이스로 다른 해석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이러한 좀 해석을 좀 지닌 채로 저희의 작업을 했을 때 미디어로서의 좀 해석된 도시. 이런 것들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그런 것들이 저희한테 흥미로웠던 지점 같아요. 그래서 저희가 실제로 시립미술관에서 메탈링문이라는 작업을 전시했었는데 배경에는 신도시에 막 아파트가 올라가는 그런 모습하고 또 개발 현장들로 이렇게 만든 영상하고 청계천에 입정동에서 수집한 물건들로 만든 키네틱 작품을 함께 전시했거든요. 근데 그 키네틱 작품들에서 움직이면서 나사들이 이렇게 움직이는 소리들이 발생하잖아요. 근데 그것들이 그 신도시의 도시 아파트 같은 것들의 영상과 같이 결합을 하니까 이게 마치 기계형 같은 것들도 도시의 사운드 같다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평소에 듣던 도시의 사운드가 마치 그냥 지나다녀도 뭔가 음악 같은 식으로 해석이 된다. 그래서 저희는 좀 미흡하게나마 도시를 새롭게 해석하는 방법으로서 그냥 관객들이 저희 작업이 이런 트리거가 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사운드 스케이프가 저희한테는 요즘에 가장 흥미롭게 좀 가지고 가는 키워드가 되는 중이에요.

유영이   소리를 수집하는 게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도시, 상상하는 도시를 만들면서 기존의 도시에서 소리를 수집해서 만들어낸다는 작업이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결국 이 작품은 상상 속의 도시를 구현해내어 작품으로 마주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작품은 실존하는 도시도 상상의 도시도 아닌 그 가운데 있는 혼종의 세계인 것 같거든요. 관객은 상상과 현재의 것들이 맞물린 도시를 마주하게 되는데요. 머레투는 관객들이 작품을 해석했으면 좋겠다는 흥미로운 표현을 썼어요. 이화진 선생님께서는 이룹빠의 작품을 관객들이 마주할 때 어떤 상호작용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이화진   앞에 말한 거랑 조금 비슷한 지점이지만 저는 익숙한 것들이 조금 새롭게 다가오는 그런 것들이 저희 작업에서 가장 크게 가져갔으면 좋겠다. 이런 것들을 많이 생각하는 지점이에요.

근데 모든 작가들이 그런 생각 많이 할 것 같아요. 내 작품이 내가 해석한 데서 멈추지 않고 관객들이 받아들였을 때 온전히 다른 해석으로 돼도 상관없다 이건 아니지만 스스로 이렇게 한 번 안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을 때 자기의 걸로 해석되기를 원한다. 이런 것들을 저희도 갖고 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가 아무래도 어린이들하고 같이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까 어린이 되기,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래서 관객들도 이게 무슨 작품일까. 대부분 저희가 전시할 때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이런 생각 많이 하잖아요 그런 것들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우선은 마주하고 그것들이 나한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그런 것들을 먼저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유영이   오히려 제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자꾸 경계 짓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반성을 하게 되네요.

이화진   제가 흥미로웠던 것 중에 하나도 홍주희 선생님 작업에서 구글 어스로 이렇게 검색하시잖아요. 근데 제가 자주 수업을 나가는 곳에 스마일 게이트에서 운영하는 퓨처앱이라는 공간이 있거든요. 근데 거기서 그 어린이 친구들하고 같이 작업을 했었대요.

제가 주도한 작업은 아니고. 그 사례를 알려주셨는데 조그맣게 그림을 그린 친구도 있고 아니면 정말 은박지를 조그맣게 만든 작업이 있어요. 근데 그걸 무슨 구글어스 프로그램에 로마의 어떤 전시관, 센트럴파크에 어떤 공간에 그거를 합성해서 놔주는 거예요. 그러면 그 친구들이 ‘제 작업 지금 샌트럴 파크에 있는 거예요.’라고 정말 실제로 있는 것처럼 그렇게 받아들였다는 거예요. 근데 실제로는 합성을 했을 때 센트럴 파크에 정말 은박지로 커다란 동상이 있거든요. 근데 자기가 만든 건 정말 작아요. 그래도 내게 저기로 가 있는 가상의 공간에 그 오류가 스스로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그 얘기를 맨 처음에는 너무 귀엽다, 너무 재밌는 발상이다, 그랬지만 친구들이 정말 내가 생각하는 그거의 경계성은 모호하면서 오히려 우리가 굳이 막 크기나 아니면 그런 오류 같은 거에 너무 중심을 둘 필요가 있나 이런 생각 많이 하면서 아까 전에 누가 경찰관이 있다가 없어지고 이런 것들의 오류를 발견해서 그런 것들을 수집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되게 어린이적 이야기를 가지고 계시다. 재밌다. 이런 생각 했었어요.

유영이   근데 지금 딱 말씀하신 게 저희 두 번째 세미나였던 것 같아요. 두 번째 세미나 때 ‘도시 조각하기’라고 해서 실제 공원에서 그 도시 조각과 공원의 상호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을 때 딱 말씀하신 부분에 있어서도 스케일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던 것 같고 그 하나가 섰을 때 도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는 너무나 많은 관계에 대해서 먼저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지금 딱 이화진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부분은 오히려 그러한 작업이 가상 세계에서 또 가능해지면서 또 하나의 재미있는 작업으로 이어진다는 얘기이신 것 같아요.

홍주희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이화진 선생님께서 그런 어린이들이 공간 안에서 그런 가상성을 가지고서 작업들을 진행했다고 말씀을 해 주셨는데 몇 년 전에 뉴욕에서도 비슷한데 진짜로 그렇게 도시 곳곳에 있는 우리가 흔히 넘어갈 수 있는 예를 들면 그냥 맥도날드, 이런 것들을 가지고 몇 년도에 있었던 작품이다는 것처럼 라벨을 해서 그거를 드러내는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그래서 맨해튼 전체, 도시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보는 그런 하나의 전시 같은 게 열렸었거든요. 작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전시인데 도시 곳곳에 있는 모든 것들을 작품인 것처럼 바라보고 거기에 작품명을 다 만들고, 몇 년도 건지. 그리고 그거에 대한 태그를 다 달아가지고 작업이 진행된 적이 있어서 그런 게 같이 연결 지어서 생각이 나는 것 같아요.

유영이   몇 년 전에 본 작업인데 어떤 작가가 국내에서 세계 일주를 한다면서 전국에 있는 파리 미용실, 밀라노 제면소와 같이 전 세계에 있는 지명과 관련 있는 간판들만 모아서 작업을 하셨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우리가 시각화된 것들을 어떻게 수집하고 또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많은 것들이 바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전시라는 것이 결국 모으고 보여주는 그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인 건데 어떻게 모으고 보는가라는 질문이 굉장히 잘 맞닿아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저한테 DM으로 한 분이 질문을 주셨는데 제가 두 선생님과 같이 공유를 하면서 답변을 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여기 계신 분들께 공유를 드려야 하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도시를 전시하고 표현함에 있어서 그 이미지 혹은 경험을 매개하고 전달하는 큐레이터이자 작가의 행위자성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도시에서 분리될 수 없는 위치에서 전시 혹은 작업을 준비하고 또 어쩌면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고 싶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다면 도시를 바라보는 화자의 관점에 따라 모든 도시 전시는 다른 측면으로 나타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는 크게 공감하고 누군가는 완전히 소외감을 느끼게 될 것 같다는 우려도 듭니다.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을 하시는 입장에서 어떤 도시에 모습을 드러내고 싶으신 건지 혹은 가장 해보고 싶은 도시의 면모가 있으실지 여쭙고 싶고 제가 가진 이런 우려, 소통의 한계라고 하는 우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라고 질문을 주셨습니다. 저희가 아까 이화진 선생님께서는 한번 말씀을 주신 것 같은데 사실 우리가 하는 작업이 현장 전시 현장에서 어떻게 소통되고 해석될 것인지는 관객들의 몫으로 남겨지기도 하죠. 여기 계신 분들이 기획하고 작업하는 입장에서 도시의 어떤 모습을 드러내고 싶은가에 대한 부분은 공통적인 질문을 한번 가져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이화진   저는 질문 주신 내용이 어떻게 보면 토론문에도 한 번 언급은 됐던 것 같아요. 저는 어떤 사람들은 크게 공감하고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는 소외를 느낄 수 있다는 도시에 만에 다른 점들이 있잖아요. 근데 전체적으로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그런 건축학적 요소나 그런 것들을 넘어선다고 생각해요. 도시가 갖고 있는 의미가. 그래서 모든 게 꽉 차 있다. 포화돼 있다. 이런 생각이 저희가 갖는 도시의 가장 큰 이미지거든요. 예를 들어서 어떤 신도시는 계속 지어대는 것들이 포화가 된 상태가 있다면 또 어디는 계속 정체돼 있는 것에 포화가 있는데 거기도 이미 어느 순간에 꽉 차 있다가 그것들이 멈춰져서 정체돼 있기도 하고 모든 것들이 지방을 떠나서 그러니까 지역을 떠나서 우리 전체가 포화된 상태에서 살고 있지 않나 갖는 도시의 큰 기조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가 계속 중간에 이야기 했던 게 하이퍼적이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드리거든요. 그래서 무한 복제를 계속해가면서 도시가 무한 복제의 반복으로 뭔가 변화되고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 제가 갖는 도시에 가장 큰 이미지인데 이런 것들이 어쩌면은 저희가 갖고 있는 한계 지점일 수도 있는데 그거를 저희가 가진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좀 단편적으로 잘 보여드리는 것이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크게는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어떤 분들은 여기 환경에 따라서 도시가 이런 이미지만은 아닐 텐데 이렇게 생각하시는 부분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대부분 그렇게 많이 생각하겠지만 자기가 갖고 보여주고 있는 생각들을 중점을 두고 생각을 하잖아요. 근데 저희는 좀 하이퍼적인 도시의 이미지들을 중점을 많이 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영이   그리고 경계가 없고 하이퍼적인 부분을 추구하는 것들이 이룹빠에서 이화진 선생님께서 추구하시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겠네요. 네. 홍주희 선생님 마지막으로 말씀하시고 마무리하도록 할게요.

홍주희   네. 저는 아까 잠깐 말씀드렸듯 도시 속의 환상성 이런 보이지 않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데 어떻게 보면 그걸 좀 더 단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키치함’일 것 같아요. 그래서 도시 속에서 우리가 그냥 일상 공간에서 특히 서울 공간에서는 너무나 혼종적인 문화들이 너무 많이 있고 예를 들면 뭐가 있을까요. 예전에 고시원 같은 공간도 마찬가지로 정말 1평 공간이라는 너무 작은 곳이지만 그게 정말 화려하게 벽지가 발라져 있는 것도 제가 예전에 모은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구름이 떠다니는 벽지가 있고 무지개 벽지가 있기도 하고 황금 열쇠로 뒤덮여 있는 벽지가 있기도 하고 굉장히 정말 작은 공간이지만 1평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이제 우리가 드러낼 수 있는 키치함과 또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그 고시원 자체의 특성 자체가 약간은 일시적으로 임시 거처이기도 하고 어떤 꿈을 가진 사람들이 그쪽에 거주하기도 하고 이런 부분들인데 오히려 그런 하나의 현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보이지 않는 그런 에너지 자체가 그렇게 표출이 되고 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이런 환상이라는 부분들. 그런데 그걸 또 연결 지어서 키치함이랑도 연결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서울 공간 자체를 예전에 피스 오브 서울이라는 프로젝트를 잠깐 한 적이 있는데 그 안에서도 그런 공간들을 키치함으로 바라보고자 한 적이 있어서 그런 부분들을 또 디자이너로서 어떻게 보면 작가로서 안내하는 하나의 안내서처럼 그런 작업을 또 진행한 적이 있다 보니까 제가 바라보는 하나의 키치함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이 다 볼 수는 있지만, 이거를 이렇게도 볼 수 있다고 하는 하나의 안내서처럼 작업을 진행한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도시 속 키치한 요소가 소외된 어떤 하나의 풍경이기도 하겠지만 그런 게 보이지 않는 도시의 단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유영이   두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다양한 키워드들이 나왔어요. 사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하는 방식에 대해 조경이 예술에 답을 묻는다면 예술을 대표하셔서 모신 오늘 두 분의 답으로 유추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게끔 힌트들을 계속해서 제공해주는 것, 그것들을 생산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해석하면서 도시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역할들을 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 마무리 >
유영이   조경과 예술의 관계를 모색하는 저희 OSOA 세미나는 12월까지 매월 둘째 주 수요일에 열리게 됩니다. 다음 달인 11월 10일에는 조경과 워크샵을 주제로 박영석 소장님께서 발제해 주실 예정입니다. 기존에 신청해 주신 분들께서는 등록해 주신 연락처로 소식을 전달드리니까 다시 신청해 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점점 더 풍부해지는 OSOA 모임, 주변에 많은 홍보도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온라인 현장에서 토론 시간이 너무 짧아서 아쉬우셨다면, 10월 20일 오후 7시에 진행될 오픈 피드백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세미나 진행과 발제 관련된 이야기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줌으로 진행될 예정이고 세미나와 같이 홈페이지와 연락처를 통해 링크를 공유할 예정입니다. 저희는 본 프로젝트를 통해 계속해서 다양한 시각과 시도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마무리하도록 할 텐데요. 오늘 참여해 주신 두 분께 간단한 말 듣고 마무리를 하고자 합니다.

오늘 저는 이화진 선생님, 홍주희 선생님과 인연을 통해서 장소성, 디자인, 예술, 공간, 전시 등 키워드를 묶는 자리를 가졌다는 점이 굉장히 의미있는 시간이었는데요. 두 분은 어떠셨을지요.

이화진   저는 예전에 유영이 선생님께서 플라잉시티 초반에 저희와 어린이 워크숍을 한번 해 주신 적이 있었어요. 이제 그때 아이들과 경복궁 일대 창성동 이런 뒷골목 들을 다니면서 시간적으로 읽는 지도, 이런 것들, 이런 작업을 해 주신 적이 있거든요. 그때 공간을 읽는 방법이 다양하구나. 그때만 해도 정말 몇 년 전인지 기억도 안 나는 정말 옛날인데. 그때 조경이 어떤 걸까. 이런 궁금증과 함께 또 내가 그냥 선입견을 갖고 있는 조경하고는 또 다른 영역이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그래서 저는 여러 가지 접점, 앞서 문학, 조각, 이런 것도 있었지만 이런 전시 영역이나 또 우리가 지금 알 수 없는 영역들과 여러 가지가 이렇게 접합이 된다면 정말 새로운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나올 수 있겠다. 이제 이런 것들이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오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유영이   네. 감사합니다. 홍주희 선생님도 한말씀 부탁드릴게요.

홍주희   네. 저도 되게 너무 즐거웠던 것 같고 특히나 그런 장소성이나 조경, 도시 이런 하나의 키워드들을 가지고서 서로 다 다른 위치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꾸려나갔다는 점이 너무 재미있고 의미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영이   네. 소중한 시간 내주신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드리면서 저희 네 번째 OSOA 세미나는 여기까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