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함께 실천하기

박영석  / yareut@gmail.com





도시는 워크숍을 필요로 하는가. 워크숍은 참여자에게 이슈를 공유하고 집단의 상호작용을 통해 문제 해결 방향 또는 실천 방안의 도출을 돕는다. 또한 다양한 실험과 가설을 공유하면서 참여자로 하여금 이슈가 처한 물리적 여건과 사회적 맥락에 대해 다면적으로 숙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준다. 한편, 공공 공간을 다루는 조경 프로젝트는 필연적으로 대상지의 특성, 이용자의 기대, 이해관계자들의 욕망이 엉킨 실타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00년대 초반 부흥했던 마을 만들기류의 커뮤니티 디자인은, 이용자를 설계 과정에 직접 개입시키면서 지금의 참여형 설계 개념과 프로세스를 공고하게 만들었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까요’라는 질문을 수없이 변형하고 되물어가는 워크숍의 쟁점들 속에서, 연극적 기호를 도입한 참여형 놀이터 설계 워크숍의 의의와 한계를 짚어보고 다음 단계의 워크숍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는 워크숍의 개념은 다소 제한적이다. “1. 학교 교육이나 사회 교육에서 학자나 교사의 상호 연수를 위하여 열리는 합동 연구 방식, 2. 교직자의 전문적인 성장과 교직 수행에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를 함께 생각하고 해결해 나가기 위한 협의회”[1]는 오늘날 워크숍이 가진 기능과 역할이 어떤 지점에서 출발했는지 어렴풋이 가늠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참여자들이 함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가는 방식이라는 점을 유념할 때, 본 발제에서 다루는 워크숍은 도시 공공 공간의 조성과 관리에 관한 참여자 간 합동 연구 모델로서 재정의할 수 있다. 나아가 본 발제에서 이르는 워크숍은 2018년 11월 25일부터 2019년 10월 27일까지 수행된 ‘mom편한 놀이터 조성 및 리뷰를 위한 연극놀이 워크숍’(이하 놀이워크숍)을 의미하며, 이는 놀이 또는 연극놀이 기법을 활용하여 참여자의 경험, 의견, 감정 등을 기록하고 이슈를 도출하는 일련의 방법론을 말한다.

L그룹과 C재단은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2017년 한 해 동안 전국 각지 다섯 군데에 mom편한 놀이터를 조성한다. 기존 1호부터 5호는 설계 업체에 의해 디자인 및 시공되었고, 주최 측은 이용자로서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6호부터 12호의 신규 놀이터 조성과 1호부터 5호의 기존 놀이터 리뷰를 위한 프로세스에 워크숍을 추가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관련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놀이워크숍이라는 개념을 고안하였다. 당시 조합놀이대, 개별 놀이 시설, 시공 방식 등이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었으나 놀이터를 직접 사용하는 어린이들의 의견 수렴은 생략되거나 평이한 설문 조사류에 그쳐왔다. 이에 놀이터 대상지를 구성하는 공간적 요소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이들의 공간감과 놀이성을 일깨우는 워크숍을 구상하였다. 나아가 어린이들의 신체 활동과 놀이 반경은 놀이 공간의 환경적 특성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으나, 기존 놀이터들은 조합놀이대를 위시한 대량 생산된 놀이 시설의 배치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어린이들과 함께 뛰어 놀고 상상하는 놀이워크숍을 통해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놀이 공간과 활동을 스스로 탐색하면서 놀이터를 설계하는 새로운 대안으로서 놀이워크숍을 추진하였다.

주어진 과업은 신규 조성 놀이터 7개소에 대한 사전 놀이워크숍과 기 조성된 놀이터 5개소에 대한 리뷰 놀이워크숍으로 구성되었다. 사전 놀이워크숍은 대상지에 연극놀이를 결부하여 신체 활동과 공간감을 인식하고, 다양한 소재를 통한 놀이성을 획득하면서, 놀이 공간을 채우는 장면 만들기와 스토리텔링에 주안점을 두었다. 리뷰 놀이워크숍은 기 조성된 놀이터를 활용한 놀이를 통해 기존의 놀이를 변형하고 확장하였으며, 놀이 환경에 대한 기초 조사를 수행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연극놀이 기법과 스토리텔링 장치를 활용하여 놀이 공간과 놀이 활동에 대한 다양한 감정의 표현과 감각을 계발하고, 공간을 구성하는 재료와 시설이 만드는 부피감을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또한 어린이들이 직접 대상지의 물성을 경험하고 즐겁게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을 상상하고 그려 낼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요컨대 연극적 기호의 학습과 자기표현의 연습을 통해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 놀이 공간/활동을 발견하고, 사소한 일상의 소재와 분위기에서 의미를 찾는 일상미학적 삶의 경험과 놀이성의 체현을 추구하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직접 만져보고 그려보고 상상하면서 만드는 놀이터는 일종의 공공 공간 설계/조성 과정의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본 발제에서는 지면상 사전 놀이워크숍에 국한하여 다루기로 한다.

놀이워크숍은 다음의 여덟 단계를 거쳐 진행되었다. 먼저 대상지 분석 단계에서는 대상지와 연계된 지방자치단체, 관리기관,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등 관계 기관을 파악하고, 대상지 주변 교통 환경과 유해요소 등 지역 환경을 검토하여 놀이워크숍 수행 방향을 설정하였다. 두 번째로 대상지의 유지관리를 책임지는 지방자치단체 또는 관리기관에게 놀이워크숍 수행 목적과 내용을 설명하고 놀이워크숍의 참가 대상(13세 미만 어린이) 모집의 협조를 구했다. 세 번째 현장 답사를 통해 대상지의 위치, 지형, 주변 시설 등 공간적 특성 뿐 아니라 인접한 이면도로, 대중교통 거점, 유해환경 등 비공간적 특성을 검토하고 놀이워크숍 기획안을 보완하였다. 네 번째로 앞선 단계에서 취득한 정보와 협조 사항을 토대로 놀이워크숍 세부 운영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에는 현장의 날씨, 참가자의 태도, 상호작용의 흐름, 긴급 상황에 따라 대처할 수 있는 보조계획을 포함한다. 다섯 번째 워크숍 참가자 모집 단계에서는 대상지 근처의 어린이집, 초등학교, 보육시설 등 차후 놀이터가 조성되었을 때 가장 빈번하게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어린이를 타겟팅하고 주최 측의 협조 공문으로 모집하였다. 여섯 번째 워크숍 사전 세팅 단계에서는 참가자 및 보호자에게 놀이워크숍 수행 관련 문자 메시지를 발송하고 문의 사항에 응대하며, 참가자 대상으로 개인 정보 활용 동의와 단체 상해 보험을 가입을 수행하였다. 일곱 번째 단계인 워크숍 수행을 거쳐, 마지막으로 놀이 리더의 리포트를 바탕으로 건축 및 조경 전문가가 놀이 환경 종합 가이드를 작성하여 주최 측에 보고하였다.

놀이워크숍은 연극놀이 전문가 3명의 놀이 리더가 대상지별로 13세 미만의 어린이 20명을 대상으로, 2명 내외의 보조 스탭과 3명 내외의 참관인을 수반하여 진행되었다. 놀이 리더는 놀이워크숍의 세부 프로그램을 수립하고, 준비물을 제작하며, 워크숍 진행 후 피드백 리포트를 작성하였다. 이 리포트는 크게 개별 프로그램 챕터와 전체 워크숍 평가 챕터로 나뉘는데 개별 프로그램 챕터는 프로그램의 활동 목표, 활동 내용, 사실 중심의 활동 결과, 의견 중심의 활동 평가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전체 워크숍 평가 챕터는 좋았던 점, 개선할 점, 총평 항목으로서 다음 놀이워크숍 운영 방향의 보완에 일조했다. 놀이 리더의 피드백 리포트와 현장 사진, 동영상 등이 건축 및 조경 전문가에게 전달되어 동선 계획, 조닝 계획, 상호작용 및 효과를 포함한 놀이 환경 종합 가이드를 작성하였다.

대상지의 상황과 참여 어린이의 특성에 따라 놀이워크숍 세부 프로그램은 매번 다르게 계획되었으나, 진행 순서 및 구성 항목은 대동소이하였다. 먼저 앞놀이(아이스 브레이킹)를 통해 놀이 리더와 참여 어린이 사이의 신뢰를 쌓고 놀이성을 파악한다. 이때 적용된 기법은 ‘자기소개 하기,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 술래잡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보물찾기, 고무줄 놀이 등’ 익숙한 기존 놀이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이후 대상지의 특성에 맞추어 새롭게 만들거나 기존 놀이를 변용한 놀이 ‘선장님과 배, 미션 임파서블, 꼬끼오 꼬끼오, 그물 술래잡기, 침묵속의 파티 등’을 통해 기존 시설이나 자연 환경을 재료 삼아 다르게 놀아보는 경험을 제공한다. 간식을 먹고 난후, 모둠 별로 모여 전 세계의 놀이터 또는 놀이 시설 사진을 보여주고 마음에 드는 점과 아쉬운 점을 공유한다. 이어 놀이터 디자인 게임을 통해 모둠 별로 공동의 놀이터 디자인을 하나 만들어 보고, 각자 개인별로 놀이터 전체를 디자인하거나 개별 시설을 그린다. 마지막으로 모든 참여자가 모여 결과물을 발표한다.

이러한 놀이워크숍 과정은 어린이로 하여금 동일한 놀이터에서 색다른 놀이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관점으로 대상지를 체험하게 되고 특히 대상지의 규모나 위치 등 이른바 놀이터의 공간감을 체득하면서 이후 놀이터 디자인 게임과 개인별 놀이터 디자인 활동에 있어 보다 유의미한 아이디어와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놀이 리더들은 이러한 프로그램 중에 소수의견으로 치부되거나 소극적인 발표로 다소 위축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은 개별 인터뷰 등을 통해 보완하였다.

‘내년에 꼭 다시 오세요’라는 어린이부터, ‘스마트폰 보다 재밌네’라며 연신 땀을 닦는 어린이, ‘이것도 추억이잖아요’라며 안내 현수막을 떼어가던 어린이, ‘다음 주에 또 해요? 또 해요?’라고 되묻던 어린이까지 하나 가득 잊을 수 없는 장면들로 놀이워크숍은 빛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놀이워크숍은 몇 가지 한계에 봉착한다. 무엇보다도 조성 프로세스 상의 맹점을 들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놀이워크숍의 결과물은 놀이터 설계 업체에게 전달되어 실시설계 도서로 작성된 후 바로 시공에 들어갔다. 놀이워크숍에 참관하러 온 설계자는 놀이워크숍의 결과를 재해석하여 도면화하고, 이 도면은 놀이워크숍 관계자에게 공유되지 않으며, 결과물이 충분히 설계에 반영되었는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도 전무했다. 두 번째로 매번 놀이워크숍의 참여자들의 나이대가 달라 놀이터 디자인 게임의 일관성 있는 적용과 평가가 불가했다. 이전 회차의 놀이워크숍 대상지와 참여자 특성을 통해 다음 회차 놀이터 디자인 게임의 수정 및 보완 등의 고도화 과정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성과 중심의 사업 진행으로 인해 놀이워크숍 기획 및 수행 일정이 촉박하여 밀도 있는 내부 평가와 분석의 시간이 부족했다. 하나의 대상지를 깊이 있게 파헤치고 다층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시간과 재원이 허락되었다면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놀이워크숍은 그 의미를 더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1년에 걸쳐 전국 각지의 12군데 놀이터 대상지에서 246명의 어린이를 만나면서 놀이와 놀이 공간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더불어 이상적인 공공 공간(놀이터) 설계 방안으로서 놀이워크숍을 기획하고 이를 적용하면서 겪은 희열만큼이나, 놀이터라는 공공 공간을 둘러 싼 수혜자-공여자 간의 이해관계로 인해 빚어지는 일련의 아쉬움으로부터 피할 길은 없었다. 개장식 일정이 가장 중요한 주최 측과 어린이들과의 호흡이 더 중요한 연구진 사이에서, 최소한의 합리성과 최대한의 효율성이라는 미명을 쓴 채 연구진을 종용해 온 필자의 부덕함의 소치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오늘 놀이워크숍을 함께 기획하고 진행한 놀이 리더 중 한 분과 놀이 환경 가이드 작성에 참여해주신 건축가를 모시고 더 나은 내일의 워크숍에 대한 고견을 청해 듣고자 한다.




[1] 네이버 국어사전(http://ko.dict.naver.com)